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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도시

9.18일 네이버 캐스트-지젝의 질문 그리고 한국


철학자에게 환호하는 대중들

지젝에게는 엄숙하게 그의 말을 경청하는 것뿐만이 아닌, 그의 말에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는 대중들이 존재한다. 연예인도, 정치인도 아닌 철학자에게 환호하는 대중의 존재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출처: Michael Bruns at en.wikipedia.org>

만약 21세기를 시작한 이 시점에서 그간의 철학사를 정리하는 책을 써야 한다면 아마도 그 마지막 장은 슬라보예 지젝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는 지젝이 특정 국가나 특정 사조에서만 다루어지는 철학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지젝의 위치는 단순히 철학 논쟁 안에만 존재하고 있지도 않다. 이 말이 자칫 철학이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오해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강조하고 싶은 방점은 바로 그가 지닌 대중성이다. 지젝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학생과 학자들뿐만 아닌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 왔다. 2012년 한 패션 브랜드 업체가 지젝의 강연을 주관하며 사전에 배부한 티켓이 암암리에 거래가 되었으며, 실제 강연장에는 배부된 티켓보다 8배나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는 사실은 지젝이 지닌 대중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이다. 일반 기업체가 종종 강연을 주관하는 일들이 생기고,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작가 마이클 샌델의 강연 또한 암표가 거래되었다는 사실로 지젝 강연의 인기가 단순히 한국 땅에서의 인문학에 대한 목마름, 혹은 강연 문화의 인기쯤으로 단순 해석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한국적인 기현상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 아니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강연하고, 강연하는 곳마다 같은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엄숙하게 그의 말을 경청하는 것뿐만이 아닌, 그의 말에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는 대중들이 존재한다. 연예인도, 정치인도 아닌 철학자에게 환호하는 대중의 존재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이 질문은 역으로 이 철학자의 존재와 말과 행동이 대중들에게 위로이자 동시에 선동이고, 공감이자 수긍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게 한다. 마치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지젝의 어떤 부분이 그를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공산주의가 망하기를 기다린 공산주의자

슬라보예 지젝. 지젝의 행보는 그가 종종 언급하곤 하는 빅토르 크라브첸코의 인생에 투사된다. <출처: corbis>

슬라보예 지젝이 태어났을 때 그의 나라는 유고슬라비아였다. 그는 그 나라의 이름과 함께 자라났다. 그러나 1991년, 그가 마흔 두 살 때 소련은 해체되었고 이에 따라 그의 국가는 각각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로 분리 독립하였다. 과거가 되어 버린 유고슬라비아는 공산주의 국가였다. 유고슬라비아가 맞는 역사의 가을에서 그는 인생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는 결코 공산주의를 옹호할 수 없었다. 그는 그의 조국에서 자유선거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했고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슬로베니아의 첫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로 나서기까지 한다. 유고슬라비아는 마침내 해체되었고 그 나라의 공산주의는 쓰러졌다. 그는 공산주의의 몰락에 마음과 몸과 말과 행동을 헌신했고 마침내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 그는 공산주의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대한 단순한 노스탤지어도, 변절도 아니었다.

칼 마르크스. 지젝이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전에도 이후에도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일부 한국 언론에서 지젝이 자신을 공산주의자가 아닌 것처럼 인터뷰한 내용은 교묘하게 왜곡된 것이다. <출처: Wikipedia>

지젝의 이러한 행보는 그가 종종 언급하곤 하는 빅토르 크라브첸코의 인생에 투사된다. 크라브첸코는 1944년 미국에 망명한 소련의 외교관이다. 그는 1946년 [나는 자유를 선택했다, 소련의 한 고위 관직자의 개인적, 정치적 삶]을 발표하며 소련과 소련의 공산주의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1950년 제목은 물론 서술 방식마저도 흡사한, 그러나 소련의 정 반대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한 [나는 정의를 선택했다, 소련의 한 고위 관직자의 개인적, 정치적 삶]을 발표했다. 그의 뜻과는 달리 공산주의를 비방한 전작만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에게 자본주의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만큼이나 착취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크라브첸코는 이후 남미의 공산주의를 지원하는 행보를 밟았다. 후에 그의 아들은 크라브첸코가 소련의 KGB에 의해 살해 되었다는 가능성을 상당히 신빙성 있게 제시하였고 이에 대한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하였지만 일반적으로 그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지젝 역시 그렇게 믿고 있는 듯하다. 지젝에게 그는 공산주의로부터 탈출하고 자본주의로부터 살해당한 인간이다. 진실이 어떻든 분명한 것은, 그리고 또 지젝에게 중요한 인식은 자신이 그러하듯 크라브첸코 역시 공산주의 국가도 자본주의 국가도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해주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지젝이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전에도 이후에도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일부 한국 언론에서 지젝이 자신을 공산주의자가 아닌 것처럼 인터뷰한 내용은 교묘하게 왜곡된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한 말을 문맥은 생략한 채 인용한 것과 같은 것이다. 지젝에게는 단지 공산주의를 표방했었던 국가들 중 그가 옹호해 줄 수 있었던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다. 공산주의 국가는 20세기에 전지구상에서 몰락해 버렸다. 여전히 남아 있는 공산주의 국가들은 그에게 결코 공산주의의 답이 될 수 없다. 이들은 그저 20세기에 실패한 공산주의의 망령일 뿐이다. 이렇게 현실에서 공산주의가 완전히 패망한 이후에서야 그는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에 남은 20세기 마지막 유물, 한국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은 아직 지젝의 길에 도달하지 못했다. 한국은 20세기의 마지막 유물, 냉전의 찌꺼기를 업고 있는 사회이다. 거의 다 죽어버린, 그러나 완전히 죽지도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오롯이 세우고 숨을 불어 넣어주는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남한이다. 북한과 같은 좀비 국가를 꼿꼿하게 세워 놓고 그에 대항함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고 하는 존재라면 그 역시 마찬가지로 좀비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남한이 성취한 민주주의적 가치들은 참으로 자랑스러울만 하지만 그것이 성숙하다고 말하기에 남한이 북한을 이용하는 방식과 북한이 남한을 이용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상대 국가는 적으로 상정되고 이 적은 실질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으로 작동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싸워야 할 적은 외부의 존재가 아니라 내부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때의 적은 허수아비와 다를 바가 없지만 이와 싸우기 위해 전체는 끊임없이 하나가 되기를 요구 받는다. 또한 이 허위의 것들은 기성 권력들과는 뜻이 다른 이들을 솎아내는 근거가 된다. 이 속에서 그들의 비리와 실수와 잘못된 판단마저 무마되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얻는다. 이 체제 유지의 메커니즘은 지루할 만큼 단순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작동 방식이다. 불행하게도 이 같은 정치 구조는 우리가 갖고 있는 더 큰 문제, 그리고 어쩌면 더 심각한 파국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문제들에 대해 함구하게 한다.

지젝이 가장 의미 있게 지적하는 파국으로부터의 위협은 네그리와 하트가 정리한 공통적인 것들의 자본주의화에서 비롯된다. 즉 문화와 교육과 사회 기반 시설들은 물론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수단마저 사유화 되는 것, 그 누구도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자연을 소유하는 것, 유전공학 기술과 같이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통제하는 수단을 자본화하려는 시도는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지젝은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마르크스 이론이 잘 맞아 떨어지지 않았던 몇몇 이유 중 하나는 중간계층의 등장으로 더 이상 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을 대변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프롤레타리아는 빈개념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젝이 지적하는 문제들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개념은 마르크스가 상상했었던 것들을 넘어서서 더 많은 주체들로 채워질 수 있다. 즉 이러한 공통적인 것의 자본주의화는 특정 국가나 계급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범지구적인 문제이며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그 누구도 이 문제에 있어서 열외가 될 수는 없다.

미래의 혹은 현재의 질문들

그런데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떤 대답들을 준비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20세기의 망령에 붙들려 있는 한국에서 이러한 현 사회의 시급한 논의들은 주변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가 21세기에 이르면서 깨닫게 된 중요한 것들은, 지젝의 방식대로 이야기 하자면 “미래로부터 온 징후”이다. 즉 우리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는 총체적 파국의 불길함은 분명 자본주의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는 하나 결코 과거 속에 존재했던 냉전적 관계로부터 온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도 알고는 있으나 말하지 않고 있었던 문제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고, 이 침묵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불길함도 우리는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지젝과 같은 맥락 위에 있는 21세기의 공산주의자들마저 20세기의 공산주의나 북한의 망령으로 치부되는 오욕 속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의심은 검열의 대상이 되어 왔다. 즉 전체주의 러시아에 대한 트로츠키의 묘사처럼 한국 역시 “아시아적 채찍과 유럽 주식시장의 사악한 결합”이 존재하고 있고 이 맞물림 때문에 정치도 경제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채 불길함만을 감지해 왔다.

21세기의 공산주의자 지젝은 과감한 어투를 통해 21세기의 질문들을 던진다. 전 세계 사람들은 이 질문에 공감하고 답변하며 공통의 것들을 만들어 간다. 여기가 그들이 환호하는 지점이며 맥락이다. 우리는 결코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우리 마음의 심연에는 분명 공산주의라는 망령 없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야기 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21세기의 시공간에서 20세기의 족쇄가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지젝은 그들의 문제를 공감해주고 대변해주는 존재이다. 그들의 환호는 이 문제에 대한 동의이며 대변자 지젝에 대한 든든한 지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기에 또 하나의 문맥이 추가된다. 우리가 말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앞으로 말해야 할 것들을 먼저 말해주는 존재로서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에서의 지젝은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서 온 사도가 된다. 우리 사회에 레드 콤플렉스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한 아마도 지젝에 대한 열광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채린
제 4회 중앙일보 신인문학상(단편소설 부분)과 한국 문화재 보호 재단 가무악극 공모에 당선(가작)되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감정 이론과 허구에 대한 감정 반응 연구’가 있고 저서로는 [철학 이야기](공저) 등이 있다. 예술과 철학, 근대와 역사에 대해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발행2013.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