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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도시

네이버 캐스트 - 철학자 바디우의 정치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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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바디우의 정치적 사유 철학의 임무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것’

2013년 9월 한국을 방문하는 진리와 주체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1937- )는 철학의 임무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잘 알다시피, 이는 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의 죄목이었다. 바디우는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죄목’을 철학의 중심에 놓는다. 무슨 말일까? 그는 젊은이들과 대화했던 소크라테스의 행위를 철학의 주요한 활동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철학은 그러한 활동 가운데 젊은이들로 하여금 어떤 일탈을 감행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바디우는 기존의 질서와 의견들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거부하는 것을 바로 ‘타락’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여기서 ‘타락’이란 철저히 지배적 질서와 의견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철학이 가르치는 것은 지배적 질서에 대항하고, 지배적인 의견들을 거부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것을 지배 질서는 ‘타락’이라고 지칭한다. 새로운 질서를 고민하는 모든 시도들은 결국 타락의 시도들이며,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는 일탈에 속하는 것이다.

철학의 임무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철학자 알랭 바디우 <출처: corbis>

지배질서는 항상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갈라놓으면서 가능한 것들만을 승인한다. 그래서 권력은 오로지 자신이 행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라고 선언한다. 모든 지배적 의견은 ‘그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사회적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이며, 의회민주주의 외에 다른 정치적 대안은 없고, 경쟁에서의 승리만이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는 유일하게 가능한 것으로 기능하며, 그것을 움직이는 정치 체제인 의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철저히 봉사하는 의견의 지배를 관철시킨다. 그 결과 ‘지금의 체제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단언이 따라온다. 다른 모든 가능성은 배제되고 금지된다. 자본주의는 브레이크 없는 열차마냥 거침없이 질주한다. 그 질주를 위한 모든 장애물은 파괴되고 제거된다.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것일 뿐이다. 그것이 가능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렇게 법의 체제는 불가능한 것을 금지함으로써 어떤 다른 가능성도 남기지 않으려 한다.

바로 그러한 금지의 조항 밖에서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철학의 일이다. 결국 철학은 기존 질서에 의해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 금지된 새로운 가능성을 사유해야 한다. 불가능한 것은 배제되고 금지되지만, 가끔은 아주 돌발적인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바디우가 말하는 사건이다. 사건은 불가능하다고 선언된 것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건은 지배질서와는 정반대로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물론 이는 실낱같은 가능성이지만, 그것이 현실 속에 돌발적으로 출현할 때, 그 불가능은 가능으로 한 발 다가선다. 그래서 종종 사건은 위험한 것으로, 범죄적인 것으로 낙인 찍힌다. 철학은 바로 그러한 사건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장을 사유하고 다른 질서, 새로운 규범적 분리를 제시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의 실제적인 가능성을 사유를 통해 제시하는 것이 바로 철학인 것이다.

억압적이고 잔인한 질서 안에 있는 젊은이들은 그 질서와는 다른 질서가 가능하다는 단언,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배적인 의견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선언을 받아들이면서 ‘타락’한다. <출처: gettyimages>

바로 그것이 이른바 ‘타락’의 시작이다. 사건을 실제적인 것으로 선언하는 개입이 있을 때,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집단들이 생겨난다. 지배 질서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분명 ‘타락한 사람들’이다. 위험하고 범죄적인 것을 추구할 때, 그들은 지배 질서의 입장에서 ‘타락한 자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주로 젊은이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이들은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 속에 있기 때문이다. 억압적이고 잔인한 질서 안에 있는 젊은이들은 그 질서와는 다른 질서가 가능하다는 단언,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배적인 의견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선언을 받아들이면서 ‘타락’한다. 바로 그것이 바디우가 말하는 철학의 임무다. 사건을 사유하는 철학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복종을 거부하게 하고 사회적 규범에 대한 다른 의견을 제시하게 하며, 지배적 질서들에 대한 반란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 반란이 맹목적이고 공격적인 폭력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 반란은 과거 랭보(Arthur Rimbaud)에 이어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가 ‘논리적 봉기들’이라고 부른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모두에게 열린 토론 속에서 제안된 원칙과 비판이 가져오는 반란이다. 따라서 이 반란은 충동적인 것도, 맹목적인 것도 아니다.

이러한 사건의 효과로 성립하는 새로운 질서의 구성요소들, 사건과 연결된 주체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언표와 그 효과들을 우리는 ‘진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주체들의 실천, 다시 말해 새로운 질서를 관철시키려는 주체들의 실천은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들을 변화시키고, 기존 질서의 중요한 부분들을 변경한다. 바로 그때 우리는 세계의 변화를 목격하게 된다. 신분제 사회의 질서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현대적 질서로 변경되었고, 7음계를 법칙으로 삼는 과거의 음악적 질서는 쇤베르크에서 시작된 12음계 음악에 의해 상당 부분 변화하였다. 이러한 질서의 변동은 국지적인 수준에서 출발하여 점점 넓은 수준으로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진리가 결코 소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자유와 평등은 더욱 넓은 지평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은 법(칙)적인 제한을 넘어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는 실천의 동력이 될 것이다. 마침내 그러한 실천은 더 이상의 자유와 평등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낡은 질서를 파열시키고, 그 실천을 통해 불가능한 것은 가능한 것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바디우의 진리 철학이 말하는 바이다.

마르크스와 레닌 <출처: Wikipedia>

그렇게, 바디우의 철학은 실천적이다. 그는 철학을 단순한 인식만이 아닌 실천적 행위로 파악한다. 다른 질서를 제시하고, 그 질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사유하는 것이 철학이다. 이러한 바디우의 문제의식은 1968년 5월 혁명 이래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는 70년대 내내 마오주의 운동의 투사였고,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다른 대안을 찾아 고군분투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의 모든 철학적 여정은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 억압과 착취를 배제하는 새로운 사회적 구성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고, 자본주의의 전세계적 지배가 관철된 오늘날 그는 과감하게 의회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적 체제와 의회민주주의적 정치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적 조직과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당면 목적은 새로운 코뮤니즘의 이념을 정초하는 일이다. 과거 코뮤니즘은 두 번의 시퀀스를 경험했다. 첫 번째 시퀀스는 마르크스에 의해 코뮤니즘의 이념의 수립되는 시기였고, 두 번째 시퀀스는 레닌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그 이념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투쟁의 시기였다. 이 두 과정은 이제 끝났고, 새로운 코뮤니즘의 이념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 바디우의 주장이다. 국가를 통해 코뮤니즘을 실현할 수 있다는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코뮤니즘의 이념을 정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뮤니즘 컨퍼런스는 이러한 새로운 이념의 수립을 위한 국제적인 모색의 시도이다. 이미 세 차례에 걸쳐(2009년 영국 런던, 2010년 독일 베를린, 2011년 미국 뉴욕) 진행된 이 컨퍼런스가 2013년 9월 서울에서 다시 열린다. 이 4차 코뮤니즘 컨퍼런스에서는 ‘멈춰라, 생각하라’라는 타이틀을 걸고 아시아에서의 코뮤니즘의 이념을 다룬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새로운 코뮤니즘의 이념을 수립하려는 노력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마침내 어두운 현실의 너머에서 새로운 정치와 실질적인 해방의 가능성이 냉정하게 사유될 것이다. 과거의 코뮤니즘을 뒤로하고 새로운 정치의 장으로 나아가려는 사유의 장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관련링크: 2013 멈춰라 생각하라 컨퍼런스

서용순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 몇 년간 바디우의 철학을 꾸준히 소개해 왔고, 존재론과 정치철학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심화시키고 있다. 현재는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옮긴 책으로는 [베케트에 대하여](2013), [철학을 위한 선언](2010) 등이 있고, ‘바디우 철학에서의 존재, 진리, 주체: [존재와 사건]을 중심으로’, ‘예술의 모더니티와 바디우의 비미학적 사유’ 등 다수의 논문을 집필했다.
발행2013.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