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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춰라, 생각하라 ]/보도

9월 30일 경향신문 기사 소개-쌍용차 농성장 앞서 ‘詩위’… 철학자 바디우의 실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302230225&code=960201


ㆍ시민들과 시집 묵독 퍼포먼스… 노동자들 만나 연대·지지 밝혀

30일 오후 6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징소리가 울려퍼졌다. 지난 24일 개막한 ‘공산주의의 이념’ 콘퍼런스 부대 행사인 ‘詩(시)위, Protestry-Occupy with Poems(시로 점령하라)’ 퍼포먼스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다. 시민 50여명이 준비해온 시집을 묵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중엔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와 고은 시인도 있었다. 바디우는 고 시인의 영문판 시집 ‘1인칭은 슬프다(First Person Sorrowful)’를, 고 시인은 송경동 시인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침묵 속에 가슴으로 읽었다. 콘퍼런스의 슬로건 ‘멈춰라, 생각하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하이라이트다. 침묵시위를 종료하는 징소리가 다시 울리자 시민들은 서로 시집을 교환한 뒤 흩어지거나,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미사에 참석했다.

저명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사진 왼쪽)와 고은 시인(모자 쓴 이)이 30일 저녁 시민들과 함께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농성장에서 열린 ‘詩(시)위, Protestry-Occupy with Poems(시로 점령하라)’에서 침묵으로 시집을 읽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고 시인은 퍼포먼스 뒤 바디우에게 “당신은 인천공항에서 출국금지 당할 것이다. 한국은 진실의 장소다. 진실의 장소에서 쉽게 떠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을 건네자, 바디우는 “시적인 진리”라고 답했다. 고 시인은 “모든 진리는 시적이다. 정치의 끝은 시”라고 했고, 바디우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고 호응했다. ‘시적 진리’를 강조하고, 시와 철학의 화해를 꾀하는 철학자 바디우는 “이 순간에는 침묵, 시위, 시 3가지가 있다. 침묵의 항의·시위의 순간이 시적인 순간으로 전환되는 이 순간은 위대하다. 한국적 창조에 참여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디우는 퍼포먼스가 끝난 뒤 이날 집단단식을 끝낸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찾았다. 그는 복기성 쌍용차비정규직 부지회장에게 연대와 지지의 뜻을 전했다. 평택 쌍용차 인근 송전탑에서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116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문기주 정비지회장과도 만났다. 문 지회장은 “고국에 돌아가면 쌍용차 사태를 주변에 널리 알려달라”고 말했고, 바디우는 “물론이다. 쌍용차 사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 상황과 투쟁을 널리 알리겠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해고와 실업에 대항하는 투쟁은 세계적인 투쟁이다. 따라서 세계 모든 노동자들이 연대해야 한다. 또 시위와 항의가 있을 때마다 전 세계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바디우는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투쟁을 알리고 연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식 언론에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모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 노동자들을 위한 미디어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세계적인 규모의 저널을 만들면 여러분의 투쟁을 처음으로 가장 먼저 싣겠다”며 “(쌍용차 투쟁 현장 같은 곳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어떤 교훈을 끌어내야 한다. 철학자로서의 성찰이 끝나면, 누구나 그런 것처럼 행동에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詩(시)위’와 쌍용차 노동자 방문은 정치에 대한 사유에 시를 개입시키는 바디우의 철학과 실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사다. 바디우는 ‘공산주의의 이념’ 공동주최자인 유령학파가 정치적 언어에서 배제된 자들이 모이는 대한문 공간을 무대로 기획한 이번 퍼포먼스 참여에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바디우는 이에 앞서 마석 모란공원을 찾아 전태일 열사와 용산참사 희생자 묘역을 참배했다. 마석 가구단지의 이주노동자들과도 만났다. 

바디우는 “이곳이야말로 글로벌 자본주의가 감추려고 하는, 자본주의의 실재”라고 말했다. 바디우는 1일 오후 7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문화와 보편성’을 주제로강연한 뒤 2일 출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