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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춰라, 생각하라 ]/보도

9.24일 경향신문 기사 <‘공산주의의 이념’ 콘퍼런스 참여 철학자 동행인터뷰>

[‘공산주의의 이념’ 콘퍼런스 참여 철학자 동행인터뷰](상) 슬라보예 지젝 “북한은 20세기 공산주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잘못됐나 보여주는 사례”


‘자본주의 이후’를 꿈꾸는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과 알랭 바디우가 24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멈춰라, 생각하라: 공산주의의 이념 2013 서울’ 콘퍼런스를 연다. 같은 주제로 런던, 베를린, 뉴욕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리는 콘퍼런스다. 실패한 현실사회주의가 아니라 보편적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를 사유하는 이들의 사상을 이택광 경희대 교수, 서용순 영남대 학술연구교수의 인터뷰로 25일, 27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슬라보예 지젝(왼쪽)과 이택광 교수가 지난 23일 오후 지젝의 숙소가 있는 서울 대치동의 한 호텔 부근에서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난 23일 오후 1시 인천공항 입국장 A게이트 앞에는 방송사 카메라가 여러 대 놓여 있었다. “설마 지젝의 입국 장면을 스케치하러 온 건 아니겠지.” 24일 개막하는 ‘공산주의의 이념’(http://theghostschool.tistory.com/) 콘퍼런스에 참석하는 철학계의 스타 슬라보예 지젝을 마중 나온 이택광 교수의 말이었다. 취재진이 입국장 안으로 우루루 들어가고 나서야 이들이 유럽파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하러 갔다 돌아오는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의 귀국을 취재하러 모인 기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후 2시. 마침 지젝과 같은 비행기에 올랐던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을 필두로 독일 프랑크푸르트발 KE 906편 승객 대부분이 A게이트를 빠져나왔지만, 콘퍼런스의 감독이자 스타인 지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설마 사상 문제로 조사받는 건 아니겠지….” 또 다른 걱정을 하던 이 교수의 휴대폰에 지젝이 보낸 문자가 찍혔다. “이번 행사가 취소됐나. 내가 잘못 온 것인가”라는 내용이었다. 지젝은 906편과 연결된 A게이트가 아니라 다른 게이트로 나와 이 교수를 찾고 있었다. 

지젝에게선 보름간의 짧지 않은 일정을 소화하려는 방문객의 행색을 찾을 수 없었다. 색바랜 진청색 반팔 티셔츠 차림에다 오른손엔 상표가 떨어져 나간 낡고 작은 여행용 가방 손잡이가 쥐어져 있었다. 이 교수가 반가운 인사와 함께 세번째 방한의 인상을 물었다. “무슨 의미의 인상을 말하라는 것인가. 그런 건 묻지 마라. 방금 비행기에서 내렸을 뿐이다. 비행을 말한다면, 괜찮았다.” 말의 내용은 까칠했지만, 지젝의 얼굴엔 웃음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지젝과 이 교수의 대담은 인천공항에서 서울 목동 출입국관리사무소로 가는 승합차 안에서 시작됐다. 지난 7월 경희대의 에미넌트 스칼러(일종의 석좌교수)로 임용된 지젝의 한국 생활을 돕기 위해 외국인 등록을 하려고 잡은 일정이었다. 

이 교수가 대담의 예열을 위해 지젝의 아들 팀의 안부를 물었다. 지젝의 농담은 계속됐다. “나는 아이들을 정말 싫어한다.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는 국가 유치원에다 아이들을 넣고 2년 동안 부모에게서 독립시킨다. 그런 제도가 좋다고 본다. 아이들은 독립적으로 키워야 한다. 지금 내 최대 현안은 (집에서) 평화롭게 일하는 것이다.” 그는 대담 말미에 게임에 빠져 있는 아들에게서 한국이 게임 강국이란 소리를 들었다며 이런 말을 곁들였다. “컴퓨터 타자를 분당 600타까지 치는 사람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다. 1초에 10타 아니냐. 정말 존경스럽다.” 방대한 양의 글을 써온 지젝은 뜻밖에 독수리 타법을 사용한다.

노엄 촘스키와의 논쟁에 관한 소감도 ‘가벼운 질문’ 리스트에 올랐다. 지젝은 “촘스키는 순진하다” “추상적 아나키스트다” “팩트를 강조하지만 디테일에 오류가 많다” 같은 말로 대담 초반 대부분을 촘스키 비판에 할애했다. 그 비판에는 국가나 이데올로기, 현실 국제정치에 관한 지젝의 문제의식이 녹아 있었다. 

▲ 노엄 촘스키는 틀렸다?
“미국의 잘못만 지적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착각
순진한 환상 속에 사는 냉소주의자일 뿐이다”


▲ 바디우와 철학적 견해차는?
“그는 반국가주의자면서 국가라는 문제에 집중
난 국가를 적으로 안 봐 문제는 사회 안 시스템”


▲ 한국에서의 인기 비결은?
“고마운 일이지만 아직 왜 날 좋아하는지 몰라
한글 번역본 두꺼워서 책장 채우기 좋더라”


이택광=지난 7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촘스키와의 논쟁을 보도했다. 촘스키는 당신의 저작 중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명제를 끌어낼 수 없다고 비판했고, 당신은 촘스키가 “실증적으로 틀린 말을 자주 한다”고 응수했다. 한국 지식사회에서도 화제였다. 보도만 보면 주변적인 논의에 머문 느낌인데 어떻게 된 건가. 

지젝=촘스키는 매우 공격적이었다. 그에 대해 무척 화가 났다. 처음 나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잘 몰랐다. 런던에서 강의할 때 청중 한 명이 질문을 해 촘스키가 날 비판했다는 걸 알았다. 즉흥적으로 대답했는데, 촘스키는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다시 나를 공격했다. 촘스키는 자기가 이성주의자고 팩트를 따른다고 여기는 것 같지만, 그가 언급한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구 유고슬라비아에 관한 이야기들은 진실이 아니다. 디테일에 잘못된 게 많다. 크메르루주는 서양인이 만든 내러티브일 뿐이다. 

지젝은 논쟁 과정에서 “촘스키가 1970년대 크메르루주의 학살에 대해 ‘주장일 뿐’이라고 했지만, 나중에 수많은 사람이 학살된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택광=촘스키는 신랄한 미국 비판으로도 유명하다. 반미주의를 어떻게 보는가. 국가와 국가 간의 대결, 중심국과 주변국의 관계에 대한 견해는. 요즘 한국에서 반미주의는 북한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적 원천이다. 미국을 또 다른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게 너무 순진하지 않은가.

지젝=촘스키와 재미 없는 논쟁만 벌였다, 그 속에서 두 가지 주목할 쟁점이 있다. 하나는 방법론에 관한 것인데, 촘스키는 이데올로기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 이데올로기는 ‘당신이 무엇을 믿는가’일 뿐이다. 어떤 나쁜 관료나 행정부와 싸우는 것만을 상상한다. 관료들이 모든 음모와 나쁜 것을 퍼뜨린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잘못만 지적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같이 이야기한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부시 같은 사람은 나에게 그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밖에 나도는 극악한 범죄자라고 해도, 정치적으로는 단순히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촘스키는 자신을 탐사 저널리스트라고 여기지만, 순진한 환상 속에 사는 냉소주의자일 뿐이다. 2008년 금융위기도 이상주의자나 실용주의자가 일으킨 게 아니다.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는 없어. 그저 비즈니스만 중요할 뿐이야”라고 여긴 냉소주의적인 은행가들이 일으킨 것이다. 촘스키는 어느 인터뷰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했는데, 그것을 보면 그는 일종의 추상적인 아나키스트다. 내가 제국주의를 변호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웃음). 특정한 적만 제거하면 된다는 주장이 이런 반미주의에 들어 있다. 중요한 건 미국에만 집중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세계의 중심 국가들에는 ‘나쁜 녀석들’이 많다. 정말 나쁜 녀석과 싸우는 그 녀석도 나쁜 녀석이다(웃음). 최근 시리아 상황을 보자. 러시아의 푸틴이 미국의 일방적 공습 방안을 비판하면서 개입했는데, 나쁜 미국과 싸우는 러시아의 푸틴은 좋은 녀석인가. 반미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좌파 일각의 관점은 구식이다. 이슬람의 상황도 복잡한데 단순화시키곤 한다. 중국은 경제적 식민주의로 아프리카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선 “미국이 아니라 중국과 함께하자”는 말이 나온다. 국가와 국가의 대결을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직면한 갈등에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갈등이 아닌 ‘가짜 갈등’이 많다. 오늘날 누가 과연 우리의 적인가. 

지젝 일행은 오후 2시40분쯤 목동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도착했다. 지젝은 이곳에서 1시간40분가량 기다렸다. 자동 사진 촬영기계 부스에 들어가 7000원을 주고 외국인등록증 규격에 맞는 증명사진도 찍었다. 여기서도 그의 입은 쉬지 않았다. 오랜 대기과정의 번잡함과 지루함을 잊게 할 정도였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같은 세션에 속한 어느 여성 학자를 두곤, “바디우랑 친해서 온 것 아닌가. 그녀의 말은 정말 지루하다. 차라리 춤이나추라고 하는 게 좋겠다”는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등록을 마치고 서울 대치동에 마련한 호텔로 가는 차에 오른 그는 이 교수에게 “요즘 한국에서 회를 먹느냐”고 물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유출과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에 대한 한국인들의 우려가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지젝은 아는 것만큼 궁금한 것도 많았다. 대담은 콘퍼런스에 관한 것으로 이어졌다.




이택광=알랭 바디우는 낡은 것으로 간주되어온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재사유하면서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내자고 했다. 당신도 의기투합해 바디우와 함께 런던, 뉴욕, 베를린에서 ‘공산주의의 이념’ 콘퍼런스를 열었다. 이번 서울 콘퍼런스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젝=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이번 행사는 내게 ‘철학적 콘퍼런스’라는 것이다. 네팔의 ‘공산주의자 친구’들이 어떤 구체적인 투쟁을 하고 있는지를 논하려는 자리가 아니다. 바디우나 내게 이 콘퍼런스는 ‘영원한 이념’ 같은 근본 문제를 따지는 자리다. 공산국가는 몰락해도, 공산주의는 살아나곤 하는 보편적 이념이다. 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지난해 6월 서울에서 만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다. 그들은 그저 자기 이익과 직업이나 지키려는 멍청한 노동자들이 아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그들의 투쟁이 삶의 방식을 지키려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관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이들의 투쟁에 담겨 있다. 공산주의의 소생은 하트와 네그리가 말했던 ‘공통적인 것’과도 관련 있다. 우리가 공유하는 실체인 자연이나 대중교통, 전기 같은 시설이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사유화에 대해서는 폭력적 수단을 써서라도 저항해야 한다.

이택광=공산주의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것은 다양하다. 한국에선 북한을 떠올리곤 한다. 한국은 오랜 기간 냉전 이데올로기에 노출되어 있어서 공산주의에 대한 경직된 태도가 남아 있다. 물론 과거 역사적 공산주의를 실패한 기획이기 때문에 아예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많다.

지젝=북한은 마르크스나 공산주의를 언급도 잘 하지 않는다. 기이한 체제를 유지하는 북한에서 볼 수 있는 건 군사적 애국주의뿐이다. 이것을 두고 단순히 “호호호” 하면서 “북한은 더 이상 마르크스를 인정하지 않아. 그러니까 더 이상 우리의 문제가 아냐”라고 쉽게 받아들여선 안된다. 역사의 교훈은 단순하지 않다. 북한은 20세기 공산주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아주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실패의 지점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젝은 북한이 유튜브에 올린 선전 동영상을 거론하며 “‘우리 위대한 지도자’가 어쩌구 하는 부분을 잘라서 보면 서구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대해 꽤 괜찮은 분석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지난 3월 타계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를 두곤 이런 비유를 했다. “그는 ‘돈 많은 카스트로’였다. 그가 한 일이라곤 돈을 뿌린 것뿐이다.” 쿠바식 공산주의를 베네수엘라에 이식하려 한 차베스의 시도를 비꼰 말이었다. 

이택광=바디우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까다로운 주체>를 쓸 때만 해도 바디우에 비판적이지 않았나. 지금은 충실한 사도인 것 같다. 철학적 견해는 다르지만, 정치적 입장에서 바디우가 공격 당하면 그를 옹호하곤 했다. 친구이면서 라이벌 관계인 것 같은데.

지젝=그와 나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90년대 처음 만났는데, 당시 우리는 서로를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웃음). 비판도 많이 했다. 바그너에 관한 것은 ‘무조건’ 통한다. 바디우가 <바그너는 위험한가>(북인더갭)를 썼을 때 발문도 썼다. 포스트모더니즘 흐름의 한 부분이 되지 않으려 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와 차이점도 있다. 그에 대해 놀랐던 건,프랑스 엘리트들은 미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가 <타이타닉>을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한 걸 이야기하면, 메릴 스트립이 나왔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웃음).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 플라톤은 <국가>에서 시인 추방론을 주장했다. 시보다 철학의 우위를 주장한 것이다. 바디우는 시와 철학의 화해를 시도한다. 바디우는 시적 진리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시가 진리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본다. 역사적 사건을 봐도 대부분 전체주의자들은 예술에 대해 광적인 열정을 보였다. 시적인 열정이 좋은 결과를 초래한 적이 없다. 시를 지나치게 찬양하면 문제가 생긴다(웃음).

이택광=국가에 관한 입장은 상반되어 보인다. 바디우가 국가의 상징성에 주목한다면, 당신은 국가를 변화하는 현실적 토대로 여기는 것 같다. 또 국가가 완벽하게 기능하는 것일 수 없다고도 생각하는 듯하다.

지젝=이번 행사를 두고 말하자면, 바디우와 나는 국가에 관한 시각이 다르다. 바디우는 반(反)국가주의자다. 그는 국가 자체를 타락한 것으로 본다. 한편 그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국가라는 문제에 집중한다. 전형적인 프랑스 좌파의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당분간 인류 사회가 존재하는 한 국가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우리는 국가를 없애지 못할 것이다.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공산주의의 이념을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는 하나의 도구나 물질적 토대라는 측면이 있다. ‘저기 있는 국가’에 희망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국가는 적이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사회 안에, 시스템에 있다. 

이택광=한국인들은 자신이 이데올로기와 관계 없다고 생각하고, 또 탈이데올로기적인 삶일수록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도발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그 점에 매료된 것 같다. 당신은 한국에서 인기가 좋다. 세 차례 예정된 당신의 대중 강연에 8000명이 신청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1800페이지 분량의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새물결)도 초판이 열흘 만에 다 나갔다고 들었다.

지젝=고마운 일이다. 한국인들이 날 왜 좋아하는지 아직 모르겠다. 얼마 전 번역본을 받았다. (두꺼워서) 책장을 채우기 좋은 책이다(웃음).

호텔에 도착한 지젝은 프런트에서 은행자동출납기와 코엑스 위치부터 물었다. 장시간 비행과 외국인 등록 절차의 피곤함은 잊은 듯했다. 그는 지난 방문에서도 혼자 남대문시장과 코엑스 일대를 돌아다녔다. 이 교수는 지젝과의 대담이 끝나고 트위터에 이런 트윗을 올렸다. “지젝을 강남 한복판 호텔에 데려다주고 왔다. 오늘 밤 지젝이 그 일대에서 유령처럼 출몰할 것이다.”

<대담 | 이택광 경희대 교수>

■ 최근작 ‘바디우와 지젝…’까지 50여종 펴내며 독일·프랑스 철학 아울러

슬라보예 지젝이 직접 썼거나 공저자로 참여한 책, 다른 국내외 학자들이 지젝에 관해 쓴 책은 50여종에 이른다. 지젝의 최근작은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민승기 옮김·도서출판 길)이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와 함께 200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진행한 강의와 대담을 엮은 책이다. 두 사람이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대답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현실 문제를 두고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따진 책이다. “철학은 현실에 개입해야 한다”고 답한 두 사람은 그 방법론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젝과 바디우가 서울에서 개최하는 ‘공산주의의 이념’ 행사의 기원과 ‘동지’라 묶을 수 있는 두 사람의 ‘철학적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여름에 나온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조형준 옮김·새물결)는 지젝의 주저 중 하나인 <Less than nothing>을 번역한 것이다. 플라톤에서 프로이트를 거쳐 바디우에 이르는 서구 형이상학의 존재론적 근거를 축으로 라캉을 경유해 헤겔이 새롭게 ‘유물론자’로서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독일 철학과 프랑스 철학을 종합한 지젝의 지적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1800여쪽의 이 책은 출간 10일 만에 1000질(2000부)이 나갔다. 현재는 1500질 정도가 팔렸다.
<멈춰라, 생각하라>(민승기 옮김·와이즈베리)도 헤겔의 철학과 라캉의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의 사상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월가 점령시위, 아랍의 봄, 노르웨이 부레이비크 사건을 분석한 것이다.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민승기 옮김·경희대출판문화원)는 지난해 6월 지젝의 경희대 특강을 책으로 묶었다. 
<임박한 파국 슬라보예 지젝의 특별한 강의>(이택광·홍세화·임민욱 지음·꾸리에)는 홍세화 ‘말과 활’ 발행인과의 대담과 강연 등을 엮은 것이다. 한국 학자가 쓴 지젝 책 중에는 필명 로쟈로 알려진 이현우씨가 쓴 <함께 읽는 지젝 9·11 이후 달라진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자음과모음)가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