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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사건

네이버 캐스트- [멈춰라 생각하라] 한성필 작가 전

 

 

 

 

네이버 캐스트 [전시회 산책] : [멈춰라 생각하라] – 예술의 사건

한성필 작가 展

 

우리는 탈이데올로기의 시대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또 다른 냉전은 계속되고 있는가? 마치 최근 한국사회에 광풍처럼 몰아친 메카시즘처럼? 하지만 더 이상 공포의 감정이 아니라 한심함과 쓸쓸함을 불러 일으키는 형태로. 이 질문은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의미없게 된 상황에서 그 의미가 한층 다양해지게 된 역설적 상황을 겨냥하고 있다. 과연 이데올로기란 무엇일까? 계몽이 필요한 허위의식에 불과할까? 아니면 새로운 주체를 호명하는 데 필요한 무엇일까? 그렇다면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살아있는 걸까?

 

동구권 출신의 무명의 지젝이 철학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첫 주저(『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에서 한물 간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거론했을 때 정확히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이데올로기가 더 긴급히 요구되는 역설에 주목했었다. 그의 저작을 계기로 다양한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기도 했다. 그리고 바디우는 그의 주저 『세계들의 논리들』(Les logiques des mondes)에서 진리 사건에 주체가 헌신하는 데 상상적인 이데올로기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 두 철학자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철학자들이 철학적 개념과 언어를 통해 이데올로기 문제, 특히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를 재사유해 볼 것을 촉구하고 있다면, 여기 소개하는 작가 한성필은 번영과 쇠퇴라는 모진 운명을 겪은 이데올로기, 특히 냉전 시대의 산물이었던 마르크스, 엥겔스 동상과 이승복 동상, 그리고 냉전의 두 블록의 경계에 장막처럼 놓여 있던 베를린의 체크 포인트 찰리와 남북한을 가르는 비무장지대가 상징하고 있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형상화함으로써 우리의 감각이 그것에 관한 사유를 향해 열리도록 자극하고 있다.

 

예술가의 작업은 그 자체로 개인적 차원에서 작가 본인의 창조력을 구현하는 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대중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어떤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대상이 놓인 사회적 배경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작품을 통해 투영시키는 행위이다. 나아가 작품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 관객들 스스로 그 작품을 통해 얻은 예술적 고민을 공유하고 논함으로써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비판하며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오늘날 지구화된 사회는 개별 사회들 간의 상호연결성이 증대하여 세계의 한 변두리에서 일어난 사건이 오히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가령, 한국의 촛불시위는 지구 저편의 철학자들에게 사유의 대상으로서 논의되고, 로컬한 예술가들은 개별적인 사건을 담은 작품을 통해 전세계인들과 글로벌하게 소통한다. 이처럼 긴밀히 연결된 전지구적 행위 앞에서 사적인 것공적인 것의 낡은 이분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에, 예술에서뿐 아니라 이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까닭에 만약 예술가의 행위와 예술작품을 통해 우리가 진정 향유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이는 바로 장벽을 초월한 공통의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공통적인 것을 서로 논의하고 그것에 기반해 소통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적 변천에 따른 아이러니

 

내게 물질을 달라. 그러면 나는 세계를 만들 것이다. 내게 물질을 달라. 그러면 나는 그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칸트, 『보편적인 자연사와 천체론』)

 

작가 한성필은 역사와 이념에 관련한 도상, 서사와 상징 속에서집단적 무의식과 시대와 공간의 변천에 따른아이러니를 발굴하고 사진, 비디오로써 도큐멘트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일련의 작업과정은 고고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비물질적인 개념과 사유를 통해 미지의 것에 대한 관심사회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시각화하고 물질화시킨다. 그만의 독특한 고민과 사유를 바탕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민감한 부분들을 건드리고 그 접촉(touch)의 결과를 작품에 녹여낸다. 동시에 그는 관객들이 자신의 작품을 접했을 때 각자의 반응에 대해 다시 한 번 멈춰서 생각해 보도록, 다른 이들과 더불어 그 생각을 교환하여 긍정의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는 동기와 자극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고자 한다.

 

이번에 열리는 지젝-바디우의 철학 축제에서 작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Amor Fati and Bindi Statues)’, ‘이승복(The Silent)’ 동상을 담은 영상과 베를린 체크포인트 찰리 ‘DMZ’의 사진을 통해 한때 냉전 이데올로기의 상징이었던 동상과 그 동상이 서 있었던 장소가 각 지역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변화로 인해 겪는 번영과 쇠퇴라는 운명의 추이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사실주의적인 이미지 뒤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의 힘 그리고 정치 이데올로기의 화려했던 시절을 기념하고 애도하는 동상과 그 장소가 시대적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어떤 의미를 부여받는가를 신화적 허구를 파헤치듯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우리의 시선이 권력과 미디어에 의해 어떻게 길들여지는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Amor Fati (운명애) & The Silence (침묵)

 

베를린 광장에 위치했던 과거 동독 시절의 존경과 숭배의마르크스’, ‘엥겔스동상을 <Workers of All Lands Unite!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마르크스의 비문에 적혀있는 문구처럼 지하철 공사를 위해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파헤치고’, ‘측량했다’. 또한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의 미간 사이에 측량점이 붙어 마치 인도인들 미간에 붙는 ‘Bindi’처럼 보이기도 한다. 크레인에 끌려 이동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은 마치 군중의 민심을 배반하고 왕위에서 쫓겨난 몰락한 왕의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심지어 영상 작품의 배경에 흐르는 베토벤의 6운명교향곡은 그들의 전락한 운명을 극대화시킨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쳤다던 반공주의의 상징인 이승복의 동상은 이제는 더 이상 이념 교육장이 아닌 소풍지로 남아 있다. 그 동상을 배경으로 아이들은 무심하게 사진을 찍고는 사라진다. 이처럼 작가는 사진과 영상을 통해 한 때 공산주의반공을 국시로 삼은 자유민주주의의 대표적 상징이었던 동상들이 그 의미를 상실하고 심지어 희화화 되고 있는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역설적 상황을 기록한다. 지금은 변해버린 시대적 상황 때문에 냉전시대와 공산주의의 상징이었던마르크스’, ‘엥겔스의 동상과 반공주의의 상징이었던이승복 동상과 기념관의 찬란했던 외양이 쇠락하고만 그 추이를 압축해서 시각적으로 담아내고, 보는 이로 하여금 이데올로기(이념)라고 하는 것이 과거의 한낱 이상적인 것으로, 현재는 오히려 허구적인 것으로 전락했음을 느끼도록 한다.

 

베를린 체크포인트 찰리 & 비무장지대(DMZ)

 

이 작품의 오브제인 비무장지대의 풍경은 그 실제 장소 대신에 한국 분단을 담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각인된 영화 ‘JSA’ 의 배경이 되었던 남양주 영화 촬영소의 일부이다. 영화 속 남한 병사 이병헌과 북한 병사 송강호가 서 있던 곳은 관광객들이 얼굴을 대고서 사진을 촬영하여 자신의 얼굴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가운데가 뚫려 있는 모델이 세워져 있다. 이 사진은 실재 DMZ의 모방의 재현이 된 영화 촬영소를 사진으로 재현하여 또 다른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일으킨다.

 

이번 철학 축제에서 남한 병사와 북한 병사의 기념사진 입간판은 다시 전시장 한가운데 세워져관객들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허구의 공간인 DMZ에서 추억처럼 사진을 찍고 남기는 방식으로 참석자 주도형 설치 및 퍼포먼스로 진행될 것이다. 또한 ‘Bindi Statues’ 사진 앞에서 지젝의 강연을 포함한 학술컨퍼런스를 진행하여 이것 역시 일종의 참석자 주도형 퍼포먼스가 될 수 있다.

 

김채원/ 미학 전공, 독립 아트 컨설턴트

그림 한성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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