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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학파

유령학파에 관하여

유령학파 인터뷰  


‘유령학파’(The Ghost School)에 관하여

 


다음은 ‘유령학파’에 관한 가상 인터뷰이다. 2013 3월 말 소리소문 없이 ‘바디우 일요일 세미나’를 시작으로 현재는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지젝-바디우 초청 철학 행사 “멈춰라, 생각하라!”를 준비하고 있다. 처음 모임의 명칭을 들었을 때의 이질감처럼 모임 구성원들의 면모가 다양하고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도 정해져 있지 않기에 인터뷰의 형식을 취했다. 인터뷰 전에 모임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와 단서란 이 모임의 지향점이 ‘사라지는 매개자’라는 것 뿐이었다. 특정 멤버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늘 모임 전체를 염두해 둔 질문이다. 질문은 ‘문’으로 그에 대한 대답은 ‘답’으로 표시했다.

 

: 이 모임이 결성된 계기가 어떤 것이었나요?

 

: 3월 경인가 이태원에서 바디우 책을 읽는 ‘일요일 세미나’ 예비 모임을 가졌던 게 그 시작이었던 거 같네요. 9월에 지젝과 바디우가 주도하는 국제 컨퍼런스가 열릴 예정이었고, 그에 대한 준비 단계로 강독 세미나를 꾸린 거죠. 그 철학적 중요도와 영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 곳에 덜 소개된 바디우의 텍스트를 함께 읽어 나가고 멀리서 올 손님과 이방인이 누군인지 미리 알아보자는 심산으로 말이죠.

 

: 그러면 그 세미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번 컨퍼런스를 준비하는 주축 멤버가 된 건가요?

 

: 그런 셈이죠. 예비 모임을 가졌던 사람들이 각자 주변에서 사람들을 데려온거죠. 그 사람들이 오게 된 동기는 다양했을 겁니다. 단순히 바디우에 관심이 있어서 혹은 나른해지는 일요일 오전을 보람있게 보내려는 생각에서 참여했을 수도 있겠죠. 마치 ‘암웨이’처럼 한 멤버가 다른 멤버를 데려오고 그 멤버는 또 다른 멤버를... 물론 할당된 수는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결국엔 바디우라는 고유명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든 거죠.

 

: 그런데 왜 ‘유령학파’인가요?

 

: 코뮤니스트 선언의 저 유명한 첫 문장 ‘지금 유럽에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에서 말하는 그 유령, 공통적인 것(the commons)을 상상하고 공동선(Common Good)을 열망하는 유령이 지금은 전세계에서, 특히 아시아에 빈번히 출몰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 멤버들의 직업이나 활동 분야가 다양하다고 들었는데, 어떤가요?

 

: 저희는 일종의 ‘점 조직’이라 저희끼리도 누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만, 다양한 것 같습니다. 철학자, 문화연구자, 출판사 편집자, 자유기고가, 방송인, 기획자, 아티스트, 대학원생, 전시회에서 우연히 알게 된 큐레이터, 그 큐레이터와 작업하는 작가 등 다채로운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일요 세미나는 소규모를 지향했기 때문에 거기에 참석하지 않았던 이들이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참여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이를테면 본행사의 부대행사로 영상제를 준비 중인데 거기에 도움을 주고 있는 영상작가와 기술적인 부분에 도움을 주고 있는 이들, 그리고 넷상에서 행사를 홍보하고 전체 모임을 관리하는 이까지, 참여하는 이들의 범위는 계속 확장하고 있는 셈이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애초 일요 세미나에는 소박하게 바디우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했던 거라 평소 자신들의 탁월함을 발휘할 기회가 적었지만,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런 장이 다양한 방향으로 열렸다고 말이지요.

 

: 그렇다면 그 얘기는 이번 컨퍼런스가 끝난 뒤에도 모임은 어떤 형태로든 지속된다는 건가요?

 

: , 애초부터 모임의 성격이나 뱡향을 정해놓지 않고, 좋게 말하면 열어두고 시작했어요. 일요 세미나에 처음 오는 이들이 가장 먼저 이 모임의 성격에 관해 질문했지만 아무도 분명하게 대답을 할 수 없었죠. 그 때는 그게 자연스러웠었죠. 중요한 건 일요일 오전 시간을 어떤 동기와 이유에서든 한 공간에 모여서 같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던 거 같아요. 마치 ‘사라지는 매개자’처럼 이번에 주최자라는 직함을 달고서 컨퍼런스를 준비하지만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는 잠시 퇴장했다가 전보다 새로운 이벤트(사건)의 장소를 찾겠죠.

 

: 지젝이 이 개념을 낡은 정치적 형식을 흔들어 놓고 새로운 형식으로 이행해가도록 새판을 짜주고 사라짐으로써 그 임무를 완수한다고 얘기했던 것처럼 말이죠?

 

: , 정확히.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단 한 번만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그리고 정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바디우의 말처럼 정치, 예술, 과학, 사랑의 네 가지 영역에서 그 다리 역할을 계속 할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이 되려고 해요. 이벤트가 있는 곳이면 거기에 가서 그 이벤트를 진짜 이벤트로 만드는 것, 이게 저희 모임의 지향이라면 지향일 수 있겠네요.

 

: 방금 플랫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특정 모델로 염두하고 계신 게 있나요?

 

: , 두 가지 정도가 있어요. 그 전에 먼저 앞으로의 저희 모임의 성격이나 방향을 말씀드릴게요.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서 저희 모임이 수면에 어느 정도 부상하게 되면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소, 즉 ‘플랫폼’과 이제 일어났거나 일어날 이벤트와 개입할 사건에 대해 여러 형태로 기록을 남기고 보관할 공간인 ‘아카이브’를 모임의 주요 성격으로 삼으려고 해요. 유럽에 이런 모임들이 몇 군데 있어요. 이론가, 활동가, 예술가, 디자이너들이 협력하는 플랫폼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요.

 

: 예를 들어 주시겠어요?

 

: 우선, 네덜란드와 베를린에 기반을 두고 있는 예술/디자인 연구소인 '  아이크 아카데미'(http://janvaneyck.tumblr.com/)가 주목할 곳이죠. 단순히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의 모임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 이론을 적극 수용해서 현실 속에서 전유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요. 최근에는 베를린의 ICI Berlin(트랜스내셔널 문화연구소http://www.ici-berlin.org/partners/212/)과 협력해서 '이론가, 예술가, 디자이너의 협력 플랫폼'을 구상 중에 있더군요. 흥미롭게도 행사명이 ‘반이론’이 아니라 '왜 이론인가?'입니다(http://www.ici-berlin.org/no_cache/event/540/?cHash=6f58e6ed6dddd7db636a7b1a8baed3f7&sword_list%5B0%5D=why&sword_list%5B1%5D=theory)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이크 아카데미에서 꾸준히 진행 중인 'After 1968'이라는 세미나 그룹입니다. 주로 68이후의 이탈리아와 프랑스 이론에 대한 소장학자들이나 활동가들의 강연과 세미나가 기획되는 곳이죠(http://www.after1968.org/) 그리고 더 바란다면, 데리다가 초대 교장으로 있었던 ‘파리 국제 철학 학교’처럼 어떤 식으로든 후원을 받아서 지속적으로 대중 강연을 열거나 역으로 외국의 연구자들을 데려와서 함께 연구하고 그 결과를 대중적인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는 거죠. , 아직 구상 단계지만요.